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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메인보드 공장 - 1

동식 2015.03.02 18:00

내가 공장에 가기로 결심한 때는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쌀쌀한 초봄이었다. 당시 나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어서 한두달안에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공장은 전에도 여러번 가본적이 있어서 익숙했다. 나는 얼른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서 공장일이 있는지 알아봤다.

예상대로 알바 사이트의 생산직 페이지에는 수많은 공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은 돈을 꽤 많이 주는대도 언제나 사람이 부족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장의 12시간 주야 교대라는 환경이 가져오는 사회와의 단절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원래 방구석 백수였다. 일할때도 놀때도 친구를 만나는 일은 없다. 때문에 공장이야말로 내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여러 모집광고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주는 곳을 찾았다. 전자계열 공장에서 월 270만원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이정도면 공장이어도 꽤 많은 편에 속한다. 공장은 전자계열과 기계계열이 있는데 전자계열은 일을 배우는건 좀 어렵지만 하는건 편하다. 반대로 기계계열은 일이 단순하지만 몸이 힘들다.

나는 이 공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바로 전화했다.

"여보세요."

40대정도 되어보이는 남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알바 사이트에서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공장일을 구하고 싶어서요."

"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9살입니다."

"그래요? 그럼 사무실로 한번 오시겠어요?"

이건 상당히 드문 경우다. 보통은 전화로 접수한 뒤에 곧바로 공장이 있는 지역의 용역업체로 직접 찾아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광고를 올리는 사람들은 중간 소개업자라서 해당 공장에 입사하려면 그 지역의 용역업체를 또 찾아가야 한다.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가겠다고 했다.

"네. 오늘 가도 될까요?"

"그래요. 오늘 한번 오세요.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고 이따 영등포역에 내려서 전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기지개를 폈다. 의욕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됐다. 앞으로 며칠정도는 더 놀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차라리 잘됐다고 위로하며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영등포역에 도착한 뒤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영등포역에 도착했습니다."

"네. 그러면 2번출구로 나오셔서 앞으로 오시다보면 XXX건물이 있는데 거기 4층이예요."

꽤 자세하게 설명해 줬지만 나는 그냥 업체 이름을 듣고 네이버 지도 앱에서 검색했다.

핸드폰 지도를 보면서 나는 쉽게 소개업체 건물에 도착했다. 4층으로 올라가자 사무실이 있었다.

30평 정도의 사무실은 칸막이를 이용해서 6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하나의 구역에 하나의 책상이 있고 책상 양쪽에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1:1 상담을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공간이라는걸 알수 있었다.

나는 일단 제일 앞에 보이는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왼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식씨죠?"

왼쪽을 보니 4~50대 정도로 보이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전화를 받았던 그 사람인것 같다.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잠깐만 의자에 앉아 계세요."

오른쪽을 보니 여럿이 앉을수 있는 큰 책상과 의자가 있어서 그 의자중 하나에 앉아서 기다렸다. 내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은 지금 어떤 여자 구직자와 상담중이었다.

"...그래요. 그러면 좋은 자리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네. 안녕히 계세요."

상담을 받던 여자 구직자가 일어나서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가 원하는 일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남자 상담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동식씨,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제가 일부러 한번 오시라고 했어요. 전화로 할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얼굴을 한번 봐야 되니까요."

남자는 말하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내 인상이 마음에 든것 같다.


"동식씨는 전에 공장에 다녀 보셨어요?"
"네."
"전에 다니던 공장은 어떤 공장이예요?"
"휴대폰 화면을 만드는 공장이었습니다."
"네. 그럼 이번에는 어떤 일이 하고 싶으세요?"
"아.. 제가 기계를 잘다루니까 기계를 다루는 일이 좋을것 같아요."
"아 오피 말이죠?"
"오피요?"

처음 듣는 단어다.

"아.. 오퍼레이터라고 해서 장비를 다루는 기사들을 다 오피라고 해요."
"아, 네."
"남자들은 대부분 오피를 많이 해요."
"네."
"지금 자리가 난 곳이 한곳 있어요. 이 회사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데 괜찮으세요?"

어차피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할거니까 경기도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네. 괜찮아요."
"시급은 5600원이예요. 근무시간은 12시간 맞교대고 휴일은 한달에 2일이고요. 월급은 250에서 270 정도 나와요."
"네. 알겠습니다."
"기숙사에서 출퇴근 하실거죠?"
"네."
"네. 그러면 전화해 볼게요."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네. 남자 한명이요. 한국 사람이예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남자가 전화를 끊었다.

"제가 담당자 번호를 적어 드릴테니까 내일 면접을 보세요."

남자가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서 나에게 줬다.

'금요일 3시, 용인버스터미널, XXX과장, 010-XXXX-XXXX'

이 사람이 그 지역의 용역업체 직원인것 같다.

"가는 법은 아세요?"
"아.. 네."
"용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이 번호로 전화하시면 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소개비를 말씀드릴게요."

남자가 화제를 돌렸다.

"저희쪽 소개비는 12만원이고요. 그중에 10만원은 첫달 월급에서 빠져나갈거예요. 그리고 2만원은 지금 저한테 주시면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소개비를 현금으로 준다는건 좀 이상했지만 나는 아무말없이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서 남자에게 줬다.

"그럼, 내일 면접 잘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내일 면접을 보면 아마 모래부터 공장에서 일하게 될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용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까지 아직 30분정도 남아있다. 면접을 보려면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할테니 근처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한장 뽑아야겠다.

지도앱을 보면서 주민센터를 찾아가는데 생각보다 멀다. 골목길이 꽤 복잡해서 주민센터에 도착하는데 15분이나 걸렸다. 버스터미널 주변은 번화가 같은 느낌인데 주민센터 주변은 오래된 빌라같은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왠지 시골적인 느낌이었다.

등본을 뽑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면서 어제 소개소에서 받은 쪽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여보세요."

30대 정도의 남자 목소리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보기로 한 사람인데요. 지금 용인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아, 네. 지금 갈테니 10분정도 기다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5분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서 또 5분정도 기다리니 승합차 한대가 터미널 앞에 섰다. 나는 열린 조수석 창문으로 운전자와 인사를 하고 미닫이 차문을 열고 뒷자석에 탔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지금 막 왔어요."
"먼저 사무실에 들릴게요."
"네."

3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잠이 부족한지 약간 피곤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차를 운전하며 공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들었거나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라서 나는 대답만 하고 더 묻지는 않았다. 승합차가 용역업체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러면 이 이력서를 작성해주세요."

공장에 입사할때는 먼저 중간 소개소에서 소개를 받고 지역 용역업체 사무실에서 구체적인 이력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공장에서 면접을 보면 입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이력서 견본을 하나 미리 써서 가져갔기 때문에 배끼는 방식으로 금방 쓸수 있었다. 반명함판 사진 1장과 주민등록등본 1통을 이력서와 같이 건네줬다.

"그러면 바로 면접을 보러 가시죠."

다시 승합차를 타고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은 공단에 있지 않고 시내의 한 구석에 있었다. 대부분의 공장은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공단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기숙사에서 통근버스를 타고도 30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공장은 시내에 있어서 출근하기가 굉장히 편할것 같았다.

"기숙사도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요."

굉장히 좋은 조건이다. 기숙사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장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다. 나는 면접을 보기도 전에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장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사무실로 사용하는 3층짜리 작은 건물 하나와 공장으로 사용하는 1층짜리 커다란 건물 하나가 있었다. ㄱ자 형태의 공장건물은 1층이라고는 하지만 높이가 3층 건물과 거의 비슷하고 넓이는 3층 건물의 6배 정도였다.

용역업체 직원은 나를 사무실 건물 2층의 회의실로 안내해주고 다시 나갔다. 회의실에 혼자 앉아서 20분정도 기다리자 처음보는 남자가 들어왔다. 아마 이 공장의 임원인것 같다. 40대 정도의 체격이 크고 약간 험상궂게 생긴 남자였다. 남자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동식씨 맞으시죠?"
"네."

저음으로 울리는 목소리였다. 의외로 표정이나 말투는 꽤 부드럽고 친근했다. 남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에 이런 공장에서 일해 보셨어요?"
"네."

내가 단정하게 웃으면서 대답하자. 남자도 웃었다. 역시 내 첫인상은 꽤 좋은가보다. 합격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하실것 같네요. 일도 일이지만 사람들과 잘 지내는게 중요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출근하실수 있나요?"
"네."
"네. 그러면 내일 아침 8시 20분까지 여기로 다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자리에서 합격이 결정됐다. 남자가 회의실을 나가고 나는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곧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용역업체 담당자가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건물밖으로 나가자 용역업체 담당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당자는 담배를 다 피우고 나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기숙사는 담당자가 말한대로 공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시내에서 약간 들어온 주택가의 원룸이라서 조용하고 좋은 환경이었다. 간단한 짐을 놓으러 기숙사방에 들어가자 방에서 누가 자고 있었다. 야간조의 사람인것 같다. 공장 기숙사는 보통 3인 1실이라서 한방의 2명은 주간조에서 일하고 1명은 야간조에서 일하는 식으로 조가 다르게 배치한다. 그러면 3인실이어도 2인실이나 1인실 같은 효과를 낼수있다. 짐을 놓고 다시 나와서 근처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야간조의 출근시간인 오후 8시에 다시 들어가자 방이 비어있었다. 방을 다시 천천히 살펴봤다. 방은 공장 기숙사치고는 꽤 컸다. 보통은 한번에 3명이 겨우 잘수 있을정도로 좁은 경우가 많은데 이 방에는 6명도 잘수 있을것 같았다. 가져온 짐을 방 한쪽에 풀고 간단하게 청소를 했다. 10시가 되니 나와 같은 조 사람, 그러니까 내 룸메이트가 퇴근해서 들어왔다.

룸메이트는 나이가 나보다 많아 보이고 키가 크고 뚱뚱한 체격이었다. 안경을 쓴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내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기로 했어요."
"네.. 짐은 아무대나 두시면 돼요."
"네."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할일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있자 그는 방 한쪽에 있는 상 앞에 앉아서 사온 빵을 먹기 시작했다. 상 위에는 노트북이 있어서 그는 빵을 먹으면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했다.

잘 시간이 되었다. 그는 이불을 편 뒤에 내게 물었다.

"이불은 안 가져오셨어요?"

사실 내가 가져온 짐에는 이불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일 하루 공장에 출근해서 일해보고 마음에 안들면 바로 그만두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이불 없이 그냥 자면 돼요."
"네..."

나는 맨방바닥에 누웠다. 불을 끄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잠들었다. 방에는 보일러가 틀어져 있어서 나도 그다지 춥지 않게 잘수 있었다.

새벽 4시정도 되자 4월의 기온이 뚝 떨어져서 보일러가 틀어져 있는데도 추워서 잠에서 깼다. 나는 잠시동안 추위에 떨다가 일어나서 보일러를 강하게 틀고 다시 잠들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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