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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메인보드 공장 - 2

동식 2015.03.09 18:00

아침 7시가 되었다. 내가 먼저 일어나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 출근준비라고 해봐야 옷입고 양말을 신는게 전부였다. 맨바닥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좀 뻐근했다. 룸메이트도 일어나서 씻고 옷입고 어제 사온 빵을 먹었다.

8시가 되자 룸메이트와 같이 기숙사를 나와서 공장으로 갔다. 기숙사에서 공장까지 천천히 걸어서 10분정도 걸렸다. 룸메이트는 공장 입구의 출퇴근 기록기에서 자기번호를 누른 뒤에 공장 건물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서 2층의 회의실로 갔다. 잠시 기다리자 어제 면접을 봤던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네."

남자와 같이 창고처럼 생긴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통통한 체격의 안경을 쓴 여자가 내게 말했다.

"옷 사이즈 몇 입으세요?"

공장의 작업복은 사이즈가 S,M,L,XL,XXL로 나눠진다. 나는 전 공장에서 L을 입었기 때문에 L로 달라고 말했다.

"신발은 몇 신으세요?"

260으로 달라고 말했다.

작업복과 작업화를 받고 공장 건물로 향했다.

공장은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 방진시설(클린룸)이 있는 공장과 없는 공장이다. 방진시설은 먼지의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시설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쓰인다. 방진시설이 있는 공장은 작업복이 우주복처럼 생기고 마스크를 써야한다. 또 작업화도 장화처럼 생겼다. 그에 비해 방진시설이 없는 공장은 작업복이 일반적인 점퍼나 반팔티처럼 생겼고 작업화는 슬리퍼다. 지금 이 공장은 방진시설이 없는 공장이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기계의 소음이 들렸다. 나를 데려온 면접자는 한 남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오늘부터 일하는 신입이야. 잘 가르쳐 줘."
"네."
"안녕하세요."

키가 크고 마른 안경을 쓴 남자였다. 이 남자가 현장의 책임자인것 같다. 공장마다 현장을 관리하는 현장 책임자가 있다. 직책은 보통 조장이나 주임으로 불린다. 주임이라고 불린 이 남자는 나를 소개받자마자 또 다른 남자를 불러서 나를 소개했다.

"신입이야. 잘 가르쳐줘."
"네."

나는 곧바로 다른 남자를 따라서 공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공장을 잠깐 둘러보니 이 공장은 개별라인식 공장인것 같았다. 개별라인식 공장은 앞라인 뒷라인의 개념이 없고 모든 라인이 독립적으로 자기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연결라인식 공장은 앞라인에서 물건을 받아와서 내 라인을 거친뒤에 뒷라인으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개별라인식 공장이 일반적으로 수량압박이 적고 편하다.

나를 데려온 남자는 키가 작고 안경을 쓴 남자였다. 남자가 말했다.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까 말 편하게 할게."
"네, 그러세요. 형."
"내가 하는거 보고 잘 배워."
"네."

첫날에 내가 배운건 매거진 맞추기와 PCB 채우기였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건 오디오의 메인보드다. 메인보드는 처음에는 PCB라는 평평한 플라스틱 판인데 이걸 기계에 넣으면 기계가 먼저 크림 상태의 납을 PCB에 적절하게 바른다. 그 다음 PCB는 움직이는 벨트 위에 올려져서 앞으로 이동한다. 여러개의 기계를 지나면서 기계가 납 위에 많은 부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가열기를 통과하면 납이 굳어져서 부품이 고정되고 메인보드가 완성되는 방식이다.

PCB는 평평한 판일때에는 쌓아둘수가 있지만 메인보드로 완성되면 쌓을수가 없다. 그래서 메인보드를 따로 안전하게 보관하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걸 매거진이라고 부르는데 매거진은 가로세로 50cm에 높이 1미터 정도의 플라스틱 틀이다. 메인보드를 위부터 아래로 일정한 간격으로 꽂을수 있도록 생겼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메인보드가 여러 종류이기 때문에 매거진의 폭을 자주 바꿔줘야 한다. 매거진은 위아래의 조절나사를 풀면 가로폭을 조절할수 있게 되어있다. 이렇게 매거진의 가로폭을 하나하나 바꿔주는 일을 매거진을 맞춘다고 한다.

PCB 채우기는 PCB를 기계에 넣을때 사람이 손으로 한장한장 넣는게 아니라, 매거진 하나에 PCB를 50장씩 채워서 매거진채로 기계에 넣는다. 그러면 기계가 PCB를 자동으로 한장씩 가져가서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틈날때마다 PCB를 매거진에 채워주는 작업을 해야되는데 이걸 PCB 채우기라고 한다.

이 일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매거진 맞추기가 약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것 이외에는 굉장히 쉬웠다.

11시에 쉬는시간이 되었다. 쉬는시간은 10분이다. 전에 다니던 공장은 15분이었는데 10분은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을 계속 맞추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은 12시 30분부터 50분동안이다. 점심시간에는 회사내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공장 건물에서 나갈때 입구에 식권이 가득 놓여져 있어서 자유롭게 가져가서 식당에서 식권을 내면 된다. 식당 밥은 꽤 맛있는 편이었다. 영양사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를 했다.

밥을 다 먹고난 뒤에 한숨 자고 싶었지만 잘수있는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야외의 흡연장소에서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은뒤에도 계속 매거진을 맞추고 PCB를 채웠다. 일을 하고 있는데 인사과에서 사람이 와서 나를 불렀다. 따라가니 지문을 등록하라고 해서 등록했다. 출퇴근 기록기는 전자식이어서 지문으로 체크할수도 있고 4자리의 사원번호를 눌러서 체크할수도 있다. 오늘 퇴근때부터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오후 4시에 쉬는시간이 되어 10분동안 쉬었다. 쉬는시간에도 딱히 할일이 없어서 그냥 화장실 갔다가 흡연장소에서 핸드폰을 했다.

오후 6시에 밥을 또 먹었다. 점심때와 똑같았다. 두번째 식사시간은 30분이었다.

퇴근할때가 거의다 되니 쓰레기를 버리라고 해서 쓰레기를 모아서 버렸다. 쓰레기는 보통 기계에서 많이 나온다.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이 두루마리 휴지같은 플라스틱 롤에 한칸씩 들어있는데 롤이 조금씩 돌아가면서 기계가 부품을 집고 남은 롤 껍데기는 다시 한바퀴 돌아서 기계앞에 놓여진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쓰레기는 공장 건물 바로 앞에 있는 회사 쓰레기장에 버리면 된다.

첫날 일이 끝났다. 첫날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내일은 쉬는 날이다. 그런데 일이 많아서 나오고 싶은 사람은 나와도 된다고 했다. 나는 나온다고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다음주부터 야간에 일하기 때문에 주임이 오늘부터 야간에 나오라고 했다. 나는 낮시간을 이용해서 짐을 옮기기로 했다.

먼저 서울의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간뒤에 집에서 짐을 쌌다. 예전에 50리터짜리 비닐봉투를 많이 사뒀는데 거기에 이불을 한개씩 담고 세면도구랑 옷같은 짐도 모두 담았다. 다 담고보니 비닐봉투가 5개나 됐다. 이건 버스로 옮길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택시를 이용해서 기숙사까지 옮기기로 했다.

콜택시를 불러서 짐을 트렁크와 뒷자리에 넣고 나는 앞자리에 탔다. 잠시후 기숙사에 도착했다. 버스로 갈때는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인데 택시로 가니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기숙사 원룸 입구에 택시를 세우고 짐을 다 뺐다. 택시가 떠나자 나는 짐을 4층의 방까지 옮겼다. 짐을 다 옮기고 정리한 뒤에 청소를 한번 더 했다.

룸메이트는 서울에 있다는 집에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 아마 오늘저녁 출근시간에 올것같다. 나는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출근시간이 되어 내가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룸메이트가 왔다. 같이 출근했다. 출퇴근 기록기에 지문을 찍었는데 잘 찍히지 않아서 여러번 했더니 됐다.

둘째날은 첫째날과 다른 일을 했다. 내가 일하는 라인은 기계중에 하나가 상태가 안좋아서 부품을 정확한 위치에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4번 기계와 가열기 사이에 앉아서 부품이 제대로 놓여졌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다.

부품이 절반정도는 제대로 놓여지지 않아서 일일히 손으로 다시 놓았다. PCB에 작은 구멍이 있어서 부품이 그 구멍에 끼워지는 방식이라서 제대로 놓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한밤중에 먹다보니 밖에 온통 깜깜했다. 검사부의 사람들은 야간에 출근을 안해서 식당 자리가 텅텅 비었다. 또 식당 아주머니와 영양사도 없어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보온밥통에서 밥을 퍼서 먹었다. 야간에는 항상 이렇게 먹는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계속 같은 일을 했다. 앉아서 단순작업을 하다보니 밥먹은 뒤라서 졸음이 쏟아졌다. 졸면서 하다가 보드를 확인못하고 그냥 보내거나, 잘못 건드려서 오히려 처음보다 더 어긋난 상태로 보내버려서 선배한테 혼났다. 부품은 가열기를 지나면 위치가 고정되기 때문에 잘못 올라가면 나중에 수리실이라는 곳에 갖다줘야 한다.

6시에 식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밥과 반찬은 12시에 먹고 남은것들이다. 그래서 야간조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개씩 무료로 지급되는 컵라면을 먹거나 아니면 직접 가져온 빵이나 과자를 먹는다. 나도 컵라면을 식당에 가져가서 먹었다.

오늘은 일보라는 것을 쓰는법을 배웠다. 일보는 각 라인마다 하루에 한장씩 써서 제출하는 일일 생산기록이라고 할수있다. 이 라인에서 어떤 모델을 생산했는지와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적고 달성률이라는 것도 퍼센트로 적는다. 달성률은 기계가 잠시도 쉬지않고 생산했을때가 100%고 기계 에러나 자재부족으로 기계가 멈추면 그만큼 비율이 내려간다. 처음이라서 일보를 적는게 꽤 어려웠다.

퇴근시간이 되어 쓰레기를 버렸다. 그러자 선배가 야간에는 할일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기계가 납을 바를때 사용하는 쇠로 된 긴 칼날같은 부품을 스퀴즈라고 하는데 야간에는 그걸 닦아줘야 한다고 했다. 스퀴즈를 들고 선배와 같이 공장 뒤쪽으로 갔다. 그러자 스퀴즈를 닦는 전용 공간이 있었다. 넓적한 사각통에 세정제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스퀴즈를 거기에 담근다음 다시 꺼내서 큰 칫솔같은 붓으로 묻어있는 납을 닦았다. 처음이라서 상당히 어려웠다. 스퀴즈를 다 닦고 다시 가져와서 기계에 끼웠다.

일보를 주임 책상에 제출하고 주간조에게 인수인계를 해준뒤에 아침 8시 30분에 퇴근했다. 월요일인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오후 8시 20분까지 출근이다.

월요일이 되었다. 오늘도 야간에 출근했다. 출퇴근기의 지문인식이 아직도 잘 되지 않는다.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니 원래 잘 안된다면서 그냥 번호로 다시 등록하라고 한다. 오늘 퇴근할때 인사과에 말해서 번호로 바꿔야겠다.

오늘은 세팅이라는걸 배웠다. 세팅이라는건 한 라인에서 하나의 모델을 다 찍고 다음 모델로 넘어갈때 기계와 이동벨트를 조절해 주는것을 말한다.

세팅을 시작하면 먼저 이동벨트의 폭을 바꿔야한다. 이동벨트는 기계 내부와 기계 사이에 있는것을 모두 바꿔줘야 한다. 그리고 기계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바꿔서 기계가 새 모델을 찍을수 있게 해야된다. 그 다음에는 이 모델에 들어가는 부품을 모두 가져와서 정해진 기계에 걸어야 한다. 이게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납을 입혀주는 기계의 납틀을 바꿔야 한다. 납틀은 얇은 철판인데 이게 모델마다 구멍이 조금씩 다르게 뚫려있어서 철판위에서 기계가 납을 쓱 바르면 철판밑에 있는 PCB에 정해진 위치에만 납이 발라진다. 세팅은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세팅을 다 하고 바로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생산을 하다가 기계에 에러가 뜨면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 에러 처리를 보기만 하다가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배우는게 어려워서 힘든게 아니라 기계에 에러가 너무 자주 떠서 짜증이 났다. 거의 5분에 한번씩 에러가 떴는데, 문제는 특별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러가 뜨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계가 노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세팅을 완벽하게 해놔도 끊임없이 에러가 떴다.

그렇게 5시간정도 에러와 싸우다보니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피곤했는데 지켜보던 선배가 이제 자기가 하겠다고 교대해줬다. 다행이었다. 그 후에는 어제처럼 부품위치 검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졸다가 부품확인을 잘못해서 선배한테 혼나면 검사자 누나가 위로해줬다. 각 라인에는 장비기사 1명과 검사자 1명이 짝을 이뤄서 일하는데 검사자는 생산된 보드가 양품인지 검사해서 양품이면 생산완료 매거진에 넣고 불량이면 장비기사에게 말해준다. 내 라인의 검사자 누나는 30대 초반이었는데 중국인이라고 했다. 중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꽤 잘했다. 내가 확인을 못해서 선배한테 혼나면 신경쓰지 말라고 위로해줬다. 만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나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줬다. 고마웠다.

어제랑 똑같이 쓰레기를 버리고 스퀴즈를 닦았다. 그리고 일보를 써서 제출한뒤에 주간조를 기다려서 인수인계를 해줬다.

퇴근할때 인사과에 들려서 사원번호를 등록했다. 4자리 번호를 내가 직접 정할수 있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까 인사과 직원이 그냥 핸드폰 뒷자리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출퇴근 기록기에서 번호를 눌러보니 잘 눌러졌다. 지문을 찍는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다. 룸메이트와 같이 퇴근해서 기숙사로 갔다.

공장에서 일한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3주동안 같은일을 하다보니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도 아직도 실수를 많이하고 에러처리나 세팅할때 느리다고 선배한테 혼난다. 아무리 많이 해도 선배처럼 빠르게 하지는 못하겠다. 선배는 3년정도 일했다고 한다.

저번주에는 원청업체에서 현장 실사를 나온다고 해서 다같이 청소를 했다. 기계를 티슈로 깨끗이 닦고 청소기로 기계안에 떨어져있는 부품 조각들을 모두 청소했다.  그리고 기계 주변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서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 있는데 그 테이프가 훼손되어 있으면 떼고 다시 붙였다. 마지막으로 라인에 있는 서랍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준비는 굉장히 공들여서 했는데 막상 원청업체 직원은 공장안을 10분정도만 둘러보고 가버렸다.

오늘은 월급날이다. 이 공장에서 받는 첫 월급이다. 일하고 있는데 주임이 와서 봉투에 담긴 월급 명세서를 줬다. 나는 용역업체 소속이라서 정직원이랑은 월급명세서가 조금 달랐다. 월급명세서에는 110만원이 적혀있었다. 월급 정산일이 저번달 말일이기 때문에 10일정도 일한 금액이다. 하지만 용역업체에서 전화가 와서 실제로 입금되는건 100만원이라고 했다. 입사할때 중간소개소에서 말한 10만원이 빠진 것이다.

10일 일하고 100만원이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아마 야간을 2주 일해서 돈을 많이 받은것 같다. 야간에 받는 돈이 주간에 받는 돈보다 많다.

월급날이라서 룸메이트형과 같이 기숙사에서 치킨을 먹기로 했다. 둘다 샤워를 하고 순살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이었다. 생맥주도 시켜서 같이 마셨다. 치킨을 다 먹고 평소처럼 핸드폰을 하다가 잠들었다.

일한지 2달이 지났다. 이제 맨날 일하는 라인 외에도 다른 라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 쉬운 라인도 있고 더 어려운 라인도 있었다. 라인마다 특징이 달라서 외우는게 조금 어려웠다. 나중에는 라인이 완전히 바뀔수도 있다고 한다.

2번째 월급을 받았다. 230만원이었다. 돈이 어느정도 모였기 때문에 나는 기숙사를 나가서 따로 방을 구하기로 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면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쉬는날 늦잠을 자거나 방에서 놀수도 없고 밖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올수도 없다. 또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수도 없다. 월세가 조금 들더라도 혼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쉬는날을 이용해서 기숙사 주변의 부동산을 돌아다녀 보았다. 마침 기숙사 바로 옆 원룸에 빈 방이 있었다. 나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6만원으로 바로 계약했다. 회사와 5분 거리이기 때문에 아주 싼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방을 혼자 쓸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요즘에도 검사자 누나가 잘해준다.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가끔 먹을것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일이 서툴러서 선배에게 자주 혼났기 때문에 만약 검사자 누나가 없었다면 예전에 그만뒀을 지도 모른다. 저번주에는 쉬는날에 누나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재미있었다. 그 후에도 가끔 퇴근후에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다.

공장에서 일한지도 4달이 지났다. 저번달부터 나는 여러 라인을 돌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이제 키작은 선배와 같이 일하지 않고 내가 한 라인을 맡아서 일한다.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내 행동이 느려서인지 생산량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기계 가동률이 항상 80%를 넘어야되는데 나는 항상 50~70%대에서 머물렀다. 세팅에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더 빨리 하라고 혼났다. 단순히 생산을 하는건 쉽지만 생산이 전혀 끊기지 않도록 관리하는건 꽤나 어렵다. 기계에서 에러도 많이 뜨고 부품도 금방 떨어져서 자꾸 생산이 멈춘다.

라인이 바뀌면서 검사자 누나도 여러번 바꼈다. 그래서 다른 누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그래도 가끔 첫 검사자 누나와 이야기를 하고 누나가 먹을것을 주기도 한다.

저번주에는 회식이 있었다. 사실 회식은 일한지 2달째 되는달에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고기집에서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런데 이번 회식은 좀 특별하게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회사의 2번째 공장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사장이 직접 고기를 구워준다고 했다. 일종의 바베큐 파티라고 할수 있다.

회식날이 되자 공장일을 평소보다 일찍 끝내고 선배의 차를 타고 2번째 공장으로 이동했다. 이 공장은 차를 가진 직원들이 많아서 모든 사람이 쉽게 이동할수 있었다. 2공장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듯 조용했다. 여기 사람들도 일찍 퇴근한것 같았다. 테니스장으로 이동하니 커다란 스탠드식 그릴이 하나 있고 거기서 사장이 직접 숯에다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릴 옆의 테이블에는 두툼한 삼겹살이 잔뜩 놓여져 있었다.

불이 다 피워지자 사장이 삼겹살을 올려서 굽기 시작했다. 그릴이 꽤 커서 고기는 금방금방 구워졌다.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30명 가까이 됐기 때문에 구워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가져가서 먹어치웠다. 사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굽다가 상무와 교대했다.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계속 굽는 모습이 힘들어보였다. 고기는 꽤 맛있었다. 야외인데도 밥과 상추와 쌈장도 준비되어 있었고 된장국도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고기를 다 먹고나자 사장이 갑자기 족구를 하자고 했다. 테니스 그물을 걸어서 족구 코트를 만들고 사장이 족구에 자신있는 사람은 다 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회식에는 운동에 자신있는 남자가 많지 않아서 몇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나도 운동을 잘 못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사장이 직접 한명씩 데려가서 족구 코트에 넣었다. 그렇게 5:5로 족구경기가 시작됐다. 사장이 자기팀을 이기면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활발하게 움직이지는 않았고 주로 사장을 포함해 한팀에 2명 정도만 적극적으로 공격을 했다. 경기는 접전끝에 사장팀이 세트스코어 2:1로 이겼다.

족구가 끝난뒤에 잠시 쉬는시간을 가졌다. 그 다음 사장이 갑자기 이번에는 축구를 하자고 했다. 축구 골대는 없기 때문에 의자를 양쪽 끝에 하나씩 갖다놓고 의자를 맞추면 골로 인정하기로 했다. 족구 경기에서 지친 남자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멤버를 많이 바꿔서 똑같이 5:5로 하기로 했다. 나는 족구경기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축구 경기에는 선수로 들어갔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54살이라는 사장은 마치 호날두가 된것처럼 현란한 드리블로 공을 몰고 돌진했다. 하지만 골대 앞까지 가도 골을 넣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면 의자의 다리를 맞춰야 골로 인정되기 때문에 2,3명이 의자 앞을 몸으로 막으면 슛을 해도 다 막혀서 튕겨져 나왔다. 그래서 공이 골대 앞까지만 가면 이게 축구인지 미식축구인지 모를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원래는 전후반을 15분씩 하기로 했는데 전반전 15분을 하고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지쳐서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래서 후반에는 1골만 넣으면 경기가 끝나는 골든골로 하기로 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격렬한 경기 끝에 결국 사장팀이 졌다. 사장은 헉헉거리면서 상대편 상무에게 상금 봉투를 줬다.

경기가 끝난뒤에 테니스장을 정리하고 2공장을 나왔다. 공장 앞에서 상무가 콜택시를 불러서 택시가 한대씩 도착했다. 그때 시간이 11시정도여서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택시안에서 누나들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나는 별로 가고싶지 않았지만 누나들이 강력하게 권해서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회사 근처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처음에는 노래방에 우리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사람들이 한명씩 찾아오고 나중에는 사장까지 왔다. 결국 회식의 2차같은 분위기가 되어서 커다란 방안에 10명이 넘는 사람이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점점 있기가 싫어져서 결국 주변의 누나들에게만 말하고 몰래 빠져나왔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잠깐 생각해보니 고기만 먹고 족구가 시작될때 도망친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월이 되었다. 이 공장에서 일한지도 벌써 5달이 넘었다.

요즘에도 수량이 적게 나온다고 주임에게 혼난다. 특히 이번주 들어서는 거의 매일 혼나고 있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짤릴 분위기다. 수량을 많이 뽑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때마다 실수를 저질러서 실수를 수습하느라고 시간이 더 걸린다. 결국 실수를 안 하면서 뽑을수 있는 수량에는 한계가 있다.

주임에게는 미안하다. 사실 주임 입장에서는 나를 봐주고 싶어도 봐줄수가 없을것이다. 나를 봐주면 열심히 일하는 다른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게 될테니까. 하지만 역시 주임의 까칠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임이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줬다면 나도 더 열심히 일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또 수량이 적게 나왔다고 혼났다. 주임에게 20분정도 꾸중을 들었는데 더이상 일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만두겠다고 했을때 주임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주임은 '그만둘 생각을 하지말고 더 열심히 일할 생각을 해라.' 라고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맞는말이지만 그만두겠다는 사람한테 그런말밖에 못하는 주임과 더이상 말하기가 싫어졌다.

결심에 찬 말투로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주임이 그럼 다음주까지는 출근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주임의 명령조의 말투를 들으니 그럴 마음도 없어졌다. 이런 사람을 위해 더 다녀줘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작업복 벗고 나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어서 오늘까지만 일하겠다고 말했다.

사직서 용지를 가져와서 빈칸을 채워서 주임에게 제출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공장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공장 사람들은 대부분 '그동안 힘들었지..' 라는 반응이었다. 내가 맨날 혼나는 모습이 공장 사람들에게도 안되게 보였나보다.

가장 친한 검사자 누나는 울것같은 얼굴로 나에게 그만두지 말라고 말했다. 누나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서로 의지하며 버텨왔는데 내가 먼저 도망쳐 버린 셈이 되었다.

근무가 끝난뒤에 작업복과 작업화를 경비실에 반납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용역업체에 전화해서 오늘 퇴사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는 그리 당황하지 않고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의 5개월간의 공장일이 끝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공장을 다닌것도, 그만둔것도 좋은 선택인것 같다. 끝이 좋지 않았던건 조금 아쉽다. 한편으로는 역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오래할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다음에는 다른일을 찾아봐야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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