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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호텔 연회장

동식 2015.03.30 18:00

공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지도 3주가 지났다. 놀만큼 놀았기 때문에 이제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찾아봤다.

여러가지 일자리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연회장 홀서빙, 시급 7000원' 호텔 연회장에서 서빙을 하는 일인것 같다. 하루만 일할수도 있고 시급도 7000원이면 꽤 높은 편이다. 괜찮은것 같다. 나는 이 일을 해보기로 했다.

모집광고 페이지에 있는 담당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홀서빙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내 이름과 전화번호, 사는 지역을 물어봤다. 그리고 오전조로 하고싶은지 오후조로 하고싶은지도 물었다. 내가 모두 대답했더니 남자가 신청이 됐다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니까 문자가 하나 왔다. 문자에는 내일 일하는 호텔의 위치와 복장에 대한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남자의 경우에는 검은구두와 검은양말을 가져가야 되는것 같다. 나는 예전에 산 검은구두가 있었다. 문자 마지막에 답문자를 보내달라고 적혀있어서 답장을 보내줬다. 이제 내일 일하러 가면 된다. 이력서나 면접같은 것도 없이 굉장히 쉽게 근무가 결정됐다.

다음날이 되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일하는 오후조였는데 문자에 1시간 전에 도착해야 된다고 써있었다. 호텔은 서울에 있어서 버스타고 1시간 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구두를 집에서부터 신고 갈까 했는데 거리가 좀 멀어서 발이 아플것 같아서 그냥 가방에 넣어가기로 했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강남까지 간다음 강남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갔다. 강남까지 갈때는 차가 별로 안막혔는데 강남에서 명동으로 갈때는 차가 심하게 막혔다. 정확히 말하면 명동 도심에 들어갈때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버스가 거의 서있는 수준으로 막혔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져서 나는 그냥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내린 정류장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거리를 걷다보니 강북은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했다. 원래 1시까지 올 생각이었는데 벌써 1시 20분이었다. 눈앞에 호텔 정문이 보였다. 굉장히 넓고 중간에 있는 회전문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회전문으로 들어가자 1층에 고급 레스토랑이 많이 있었다.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요리를 먹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1층을 쭉 둘러보다가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화를 해봐야되나 생각하다가 어제 받은 문자를 다시 한번 곰곰히 살펴봤다. 문자 끝부분에 '정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보안실을 통해서 들어올것' 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이 보안실이라는 곳이 직원전용 출입구인것 같다. 다시 호텔을 나와서 정문 주변에 다른 출입구가 있나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정문 오른쪽에 또다른 작은 입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탑차가 주차되어 있고 직원들이 차에서 어떤 상자를 꺼내서 건물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유니폼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혹시 이 사람들이 오전조 직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되나 고민됐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사복을 입은 남자 한명이 호텔 입구를 지나서 이쪽으로 왔다. 나는 이 사람도 나처럼 오후조로 출근한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보안실 앞에 펼쳐져있는 노트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지금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보였다. 남자에게 홀서빙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되는지 물었다. 남자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했다. 나도 노트에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남자가 간 길로 따라서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가자 계단이 끝나는 부분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목록이 인쇄된 A4용지를 들고있는 것으로 봐서 이 사람이 인원을 관리하는 관리자인것 같았다. 내가 눈을 마주치자 남자는 내 이름을 물었다. 내가 대답하자 남자는 종이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목록에 내 이름이 있는걸 확인하고 남자는 나에게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복도 끝에 있는 의상실에서 유니폼 정장을 받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에 개인 물건을 가지고 탈의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복도를 따라갔다.

앞으로 가다보니 먼저 탈의실이 보였다. 탈의실 앞 복도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들만 있는게 아니라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탈의실을 지나쳐서 계속 앞으로 가니 왼쪽에 의상실이 보였다. 의상실로 들어가니 한 여자가 사람들에게 옷 사이즈를 묻고 직접 옷을 골라주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여자가 나에게 옷 사이즈를 물었다. 먼저 바지 사이즈를 물어봐서 30이라고 대답했다. 여자가 30짜리 정장바지를 건네줬다. 그리고 상의는 사이즈를 묻지 않고 95면 맞을거라고 말하며 바로 95짜리 와이셔츠와 자켓을 건네줬다. 경험이 많아서 눈대중으로 봐도 정확한가 보다. 

정장 한벌을 받고 탈의실로 갔다. 탈의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탈의실이 굉장히 넓었고 특이하게도 탈의실 안쪽에 큰 화장실이 있었다. 사물함도 많이 있었지만 하루만 일하는 사람들은 사물함을 쓸수 없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놓여져 있는 의자에 옷을 잠깐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상의는 딱 맞았다. 역시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바지도 허리는 딱 맞았는데 길이가 조금 길어서 바닥에 끌렸다. 아무래도 내 다리가 짧은가보다.

정장을 입은 상태로 다시 의상실로 가서 바지 길이가 길다고 말했다. 여자가 길이가 몇인지 봐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냐고 물어보니까 지퍼를 열어보면 거기 허리 사이즈와 같이 써있다고 말했다. 의상실 구석으로 가서 살짝 지퍼를 열고 사이즈표를 찾았다. 사이즈표를 보니 30-40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여자에게 길이는 40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가 30인 바지중에서는 길이가 40보다 짧은게 없다고 했다. 그대신 29-39짜리 바지가 있는데 한번 입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바지를 받아서 다시 탈의실로 갔다. 29-39짜리 바지는 확실히 길이는 맞았지만 허리가 너무 조였다. 이 바지를 입으면 숨을 못쉴것 같아서 그냥 다시 30짜리 바지로 갈아입었다. 의상실로 가서 29짜리 바지를 돌려주고 그냥 30짜리로 입겠다고 했다. 바지끝이 끌리지 않도록 최대한 배바지로 올려서 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들고 탈의실 앞 복도에 섰다.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살펴보니 인원은 30명정도 되고 남자와 여자는 반반정도 돼보였다. 어려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2시가 되자 아까 인원체크를 했던 관리자가 멀리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외쳤다.

모두 관리자를 따라서 계단을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린넨실이라는 테이블보를 모아두는 방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관리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린넨실의 한쪽 구석을 가리키면서 짐은 저기에 두면 되고 귀중품은 꼭 직접 가지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관리자는 린넨실 한쪽에 있는 책상앞에 앉으면서 짐을 놔둔 사람은 한명씩 자기에게 와서 출근 사인을 하고 나비넥타이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관리자가 말한대로 짐을 놔두고 관리자앞에 가서 줄을 섰다. 출근 사인은 보안실 앞에서 적었던대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현재시간을 적었다. 나비 넥타이를 받고 보고 있는데 관리자가 내 앞에 있던 남자에게 머리에 젤을 좀 바르라고 말했다. 출근 노트 옆에 공용 젤이 놓여져 있었다. 내 앞의 남자가 머리에 젤을 바르는 동안 나는 나비 넥타이를 들고 근처에 있는 큰 거울로 갔다. 유니폼 와이셔츠는 목 칼라가 앞쪽에 삐죽 튀어나오는 부분만 있고 뒤에는 없었다. 나비 넥타이도 모양이 미리 잡혀있고 똑딱이로 다는 방식이라서 매는건 어렵지 않았다.

나비 넥타이를 다 매고 핸드폰을 하면서 잠시 기다렸다. 모든 사람의 사인이 끝나자 관리자가 1층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관리자를 따라서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으로 내려오자 굉장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우선 앞쪽 끝의 벽에는 커다란 화이트 보드가 걸려있었다. 또 왼쪽 끝에는 큰 문이 보였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무언가를 올려놓을수 있는 긴 테이블이 한줄로 길게 놓여져 있었고 오른쪽 끝에는 넓은 오픈형의 주방이 있었다.

화이트 보드 앞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가장 많아보여서 고참 관리자라는걸 알수있었다. 우리들을 데려온 인원담당 관리자는 그 남자를 지배인이라고 불렀다. 지배인이라고 불린 남자는 우리에게 6줄로 서라고 말했다.

줄서는게 대충 끝나자 지배인은 앞쪽부터 한줄씩 앉게 해서 인원을 체크했다. 지배인이 인원 관리자에게 인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원 관리자가 2명이 안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배인이 인원 관리자에게 인원관리를 제대로 못하냐고 혼냈다. 인원 관리자가 좀 불쌍했다. 지배인은 말투나 표정으로 볼때 성격은 나쁘지 않지만 약간 단순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는 사람 같았다.

인원파악이 끝나자 지배인이 할일이 있다면서 앞쪽부터 사람을 몇명씩 끊어서 일을 시키러 보냈다. 그리고 감독 역할로 정직원 관리자를 한명씩 붙여줬다. 남자들은 주로 물건을 옮기거나 의자를 배치하는 등의 몸을 쓰는 일을 시켰다. 여자들은 그릇에 반찬을 담거나 테이블 위에 식기를 놓는 일을 시켰다. 앞쪽에서부터 끊다보니 마지막에 나와 남자 1명과 여자 1명만 남았다. 지배인이 우리 3명에게 린넨실을 정리하라고 시켰다. 키큰 남자 관리자 한명이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따라서 2층 린넨실로 올라갔다. 수많은 테이블보가 쌓여 있었는데 관리자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테이블보를 정리해야 된다고 말했다. 내 키 정도 되는 커다란 창살모양 카트에 테이블보가 가득 담겨있었다. 카트의 문이 위 아래가 따로 열리는 방식이었는데 위쪽 문만 연뒤에 쌓여있는 테이블보를 조금씩 꺼냈다.

테이블보를 조금 열어서 상표를 보면 테이블보의 크기가 3T 짜리인지 2T 짜리인지 알수 있는데 두종류의 테이블보를 각각 다른 보관용 선반에 가지런히 쌓아야 된다고 했다. 양이 꽤 많았지만 3명이서 하니까 금방 끝났다. 일하다가 문득 이렇게 젊은 여자와 이야기해 본것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보 정리가 다 끝나자 관리자와 같이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그릇에 반찬을 담고있었다. 오늘은 중국 요리라서 반찬은 3종류였다. 첫번째는 오이 피클이고 두번째는 볶은 땅콩이었다. 그리고 3번째는 짜사이라는 반찬이었는데 중국집에서 가끔 볼수있는 주황색 단무지를 채썬것 같은 반찬이었다. 반찬은 첫번째 전채 요리가 나갈때 같이 나가서 마지막 요리인 디저트를 먹기전에 치운다. 그 전에 반찬을 다 먹으면 우리가 또 갖다준다.

반찬을 다 담고나서 이번에는 다같이 홀로 들어가서 와인잔과 물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그때 홀을 처음 봤는데 굉장히 넓었다. 테이블도 20개정도 되고 한 테이블마다 의자가 10개씩 놓여져 있었다. 앞쪽에는 간단한 무대가 있었고 천장에는 조명장치도 있었다. 모임의 이름을 보니 부자들이 많이 올것 같았다. 유명한 사람이 온다는 얘기도 들렸다.

와인잔과 물잔을 다 놓고 나오자 지배인이 화이트 보드 앞으로 모이라고 했다. 모두 모이자 지배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요리는 중국요리고 연회는 6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맨 처음에 서빙이 시작되면 직원들이 모두 와인을 한병씩 들고 들어가서 와인을 따라주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와인병을 들때에는 오른손으로 와인병 중간을 잡고 왼손은 냅킨을 한장 집어서 와인병 바닥을 받쳐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와인을 따라줄 때에는 오른손 한손으로 들고 따르고 따르는걸 멈출때 오른손을 약간 비틀어서 와인을 흘리지 않도록 해야된다고 했다.

와인을 다 따르고 나오면 다시 보드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요리 서빙이 시작된다고 했다. 오늘 중국요리 코스는 총 10가지 음식이 서빙된다고 했다. 시작은 채소를 살짝 익히고 소스를 뿌린 전채요리부터 시작해서 그 후에 스프, 짜장면, 스테이크 등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중국식 푸딩이 디저트로 나온다고 했다.

홀에 테이블이 많기 때문에 서빙을 할때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미리 담당할 테이블을 정했다. 테이블을 앞쪽 무대에서부터 한줄씩 라인으로 나누고 직원들은 8명을 한 조로 정했다. 그리고 서빙을 할때 직원 한 조가 테이블 한 라인을 책임지도록 했다. 그리고 한 조에서도 순서를 정해서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안쪽의 테이블부터 서빙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직원이 거의 동시에 서빙을 할수있다.

나는 조에서 두번째 순서였다. 내 앞에는 정직원 여자가 리드하는 역할을 맡고 우리조의 조장인 정직원 관리자는 제일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직원 여자는 꽤 예뻤다. 교정기를 껴서 이를 잘 보여주지 않았지만 얼굴이 예쁘고 입꼬리만 올려서 짓는 미소가 귀여웠다.

연습삼아서 모든 직원이 실전과 같은 순서로 들어가서 와인을 따르는 연습을 했다. 테이블이 많고 배치가 지그재그로 되어있어서 내 테이블을 찾는게 꽤 힘들었다. 와인을 따르거나 음식을 서빙할 때에는 먼저 테이블의 11시나 5시 방향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따라야 한다. 와인병은 진짜로 들지 않고 그냥 손으로 따르는 모양만 취하면서 연습을 했다.

와인 따르기 연습이 끝나고 화이트 보드 앞에 모이자 지배인은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그 대신 똑똑해 보이는 한 남자 관리자가 화이트 보드 앞으로 와서 지배인이 했던 설명을 간략하게 다시 해줬다. 지배인이 했던 설명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또 손님에게 음식을 쏟는 등의 실수를 했을때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대처법은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3번 이상 말하고 음식을 닦은 뒤에 '지배인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 지배인이나 다른 관리자에게 말하면 된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항의 전화가 올수도 있다고 했다.

설명을 다 들은뒤에 물잔에 물을 따르러 갔다. 물을 따르는 과정이 상당히 신기했다. 먼저 커다란 원통형의 아이스 물통이라는걸 가져왔는데 윗부분의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 얼음이 1/3 정도 차 있었다. 그 다음 20리터짜리 커다란 생수통을 가져와서 뚜껑을 열고 생수를 전부 아이스 물통안에 넣었다. 그리고 아이스 물통의 아래부분에는 정수기 꼭지같은 장치가 있어서 누르면 물통안의 물이 나왔다.

그리고 2리터 정도 크기의 철제 주전자를 잔뜩 가져와서 주전자에 차가워진 생수를 넣었다. 그러면 직원들이 주전자를 하나씩 들고 홀로 들어가서 물잔에 물을 따랐다. 주전자는 굉장히 차갑고 약간 무겁기 때문에 들고갈때 한손으로 냅킨을 잡고 주전자 아래쪽을 받쳐줘야 한다.

물을 다 따르자 지배인이 사람들에게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그때 시간이 5시 5분이었는데 5시 35분까지 밥을 다 먹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관리자를 따라서 서둘러 구내식당으로 갔다. 구내식당은 지하1층에 탈의실 근처에 있었다. 식당 밥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밥을 다 먹고 다시 화이트 보드 앞으로 돌아오자 왼쪽에 있는 긴 테이블에 뚜껑을 딴 와인병이 수십개가 올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 돌아오자 지배인이 미리 정한 조대로 한줄로 서라고 말했다. 연습했던 대로 한줄로 서서 대기했다. 5시 50분이 되자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는 가수가 노래를 마치면 와인병을 들고 들어간다고 했다. 가수가 3번째 노래를 시작하자 지배인이 모두 와인병을 들라고 말했다. 와인병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와인병을 두손으로 들고 대기했다.

가수가 노래를 마치자 지배인이 들어가라고 말했다. 1조부터 차례대로 홀로 들어가서 정해진 테이블로 향했다. 한번 연습을 해봤는데도 내 테이블을 찾는게 어려웠다. 다행히도 와인의 경우에는 선두의 여직원과 같은 테이블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여직원을 따라가서 무사히 따를수 있었다.

와인을 다 따르고 돌아오자 벌써 오른쪽의 긴 테이블에서는 전채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긴 테이블에 직사각형의 쟁반이 잔뜩 펼쳐지고 한 쟁반에 전채요리 접시가 8개씩 올라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돌아오고 5분정도 뒤에 지배인이 전채요리 쟁반을 하나씩 들라고 말했다. 쟁반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래도 쟁반 자체가 꽤 커서 중심이 너무 어긋나면 쏟아질수도 있을것 같았다.

조심조심 들고 한줄로 서서 대기하는데 갑자기 내앞의 여직원이 뒤돌아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직원이 말하길 원래는 1번, 2번 테이블을 2명이 같이 서빙해야 하지만, 1번 테이블에 손님이 9명밖에 없으니까 나에게 그냥 1번 테이블에 접시 8개를 모두 서빙하고 가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이 1번 테이블에 1개를 주고 2번 테이블까지 모두 서빙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새로운 서빙 방식을 머리속에서 그리고 있는데 지배인이 지금 들어가라고 말했다.

요리 서빙이 시작됐다. 와인때처럼 1조부터 한줄로 홀에 들어갔다. 내 앞의 여직원이 1번 테이블에 요리 하나를 놓고 바로 2번 테이블로 갔다. 나는 그 왼쪽부터 서빙을 시작해서 1번 테이블에 8개를 모두 서빙했다. 오른손으로 접시를 내려놓을때 왼손으로 쟁반의 균형을 유지하는게 조금 어려웠다.

서빙할 때마다 손님에게 '실례하겠습니다. 음식 놔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 되는데 나는 그게 귀찮아서 그냥 '실례하겠습니다.'라고만 말할때도 있었다. 서빙을 다 하고 다시 화이트 보드 앞으로 와서 줄을 섰다.

직원들이 줄을 다 서고나서 3분정도 지나자 지배인이 접시를 치우러 들어가라고 말했다. 이러면 손님이 요리을 먹는 시간이 5~7분 정도밖에 안되는데 너무 짧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들어가서 접시를 치웠다. 다 먹은 손님부터 접시를 치우니까 음식이 남아있는 손님도 젓가락을 놓고 접시를 치울수 있게 비켜줬다. 빈 접시는 여러장을 쌓을수 있어서 서빙할때보다 편했다.

접시를 다 치우고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있는 아주머니 앞에 싱크대에 접시를 내려놨다. 다른 직원들은 접시를 아무렇게나 놓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가지런하게 정리해서 가져가기 쉽게 안으로 밀어줬다.

접시를 주방에 주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오자 벌써 다음 요리인 스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채요리가 서빙할때 접시 하나만 내려놓으면 되는것과 달리 스프는 서빙할때 스프 그릇 이외에도 그릇 받침과 사기 스푼을 같이 내려놔야 된다. 그릇 받침은 작은 접시처럼 생겼는데 쟁반 한쪽에 8개가 쌓여져 있었다. 그리고 사기 스푼도 쟁반 한쪽에 8개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스프가 담긴 그릇이 8개가 놓여져 있었다.

쟁반을 들어보니 상당히 무거웠다. 전채요리 쟁반보다 크기가 작은 원형 쟁반인데도 무게는 2배가 넘는것 같았다. 조심히 들고있다가 지시가 내려지자 방금전처럼 한줄로 들어갔다. 서빙은 방금전처럼 내가 1번 테이블을 맡고 여직원이 2번 테이블을 맡았다.

스프를 내려놓을 때에도 약간 힘들었다. 내려놓을때 그릇 받침만 먼저 내려놓으면 안되고 쟁반 위에서 스프 그릇을 그릇받침 위에 올린다음 그 옆에 스푼까지 올려서 그릇받침을 잡고 한번에 내려놔야 한다. 한번 내려놓을 때마다 그런 조립 과정을 거치다 보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스프를 다 서빙하고 화이트보드 앞에서 줄을 서기가 무섭게 그릇을 치우러 가라는 말이 들렸다. 연회 진행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당황스러웠다. 그릇을 치우러 들어가니까 이번에도 아직 먹고있는 손님들이 있었다. 다 먹은 손님의 그릇을 치우기 시작하니까 먹고있는 손님이 잠시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곧 단념하고 그릇을 치울수 있게 비켜줬다.

스프는 치울때 3가지 식기를 모두 회수해야 되기때문에 약간 귀찮았지만 스프 그릇을 쌓을수 있어서 서빙할때 보다는 편했다. 설거지 장소에 그릇을 반납하러 가니까 빈 그릇들이 전보다 더 난장판으로 쌓여 있었다. 아주머니가 그릇을 좀 밀어달라고 해서 일단 손에 닿는 그릇들을 최대한 안쪽으로 밀어주고 왔다.

그릇을 반납하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줄서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요리가 준비되는 긴 테이블도 비어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나를 빼고 다음 요리가 출발해 버렸다는걸 알수 있었다.

늦게라도 요리를 들고가려고 해도 요리가 하나도 없어서 그럴수도 없었다. 어쩔수 없이 그냥 기다렸다. 잠시뒤에 사람들이 돌아왔다. 내 앞의 여직원에게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자 여직원이 웃으면서 빨리 와야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줄을 다 서자 곧바로 접시 회수 지시가 떨어졌다. 이제는 대기시간이 전혀 없고 모든 진행이 논스톱으로 이루어졌다. 재빨리 들어가서 접시를 회수했다. 주방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남긴 음식이 많아서 음식물을 버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접시채로 놔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접시를 반납하고 화이트 보드 앞으로 왔는데 사람들이 벌써 들어가고 있었다. 남은 요리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남은 요리는 없었다. 또 순서를 놓쳐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반찬이라도 들고가서 반찬이 없는 손님에게 채워줬다.

또다시 접시 회수를 위해 줄을 섰다. 맨 뒤에 있던 조장이 내게 와서 조금만 더 빨리 와달라고 말했다.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접시 반납이 느린 이유가 너무 가지런하게 반납해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접시를 회수해서 들고오면서 음식물을 대충 한곳으로 합쳤다. 그리고 주방에 가자마자 음식물부터 버리고 접시는 대충 올려두고 그냥 왔다. 그렇게 하니까 시간을 맞출수 있었다. 연회 진행이 너무 졸속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식으로 순식간에 10가지 음식을 모두 서빙했다. 시간은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체감상으로는 30분 정도밖에 안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쟁반을 받치는 왼팔이 뻐근했다.

마지막 요리까지 서빙하자 지배인이 10분간 휴식하고 다시 이곳으로 오라고 말했다. 지하로 내려가서 탈의실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왔다.

사람들이 다시 화이트보드 앞에 모이자 지배인이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모두 수고했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이제 손님들도 연회장을 나가고 있으니 들어가서 치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모두 쟁반을 하나씩 들고 홀로 들어갔다. 남아있는 접시와 젓가락등을 치웠다. 식기를 다 치우고 물잔과 와인잔을 한곳에 모아서 잔을 담는 상자를 가져와서 담았다.

잔까지 다 치우고 나자 테이블이 깨끗해졌다. 관리자가 내일 연회는 오늘보다 규모가 작으니까 테이블이랑 의자를 좀 빼야 된다고 말했다. 안쓰는 의자의 덮개를 벗겨서 10개씩 모아서 묶고 의자는 겹쳐서 10개씩 모았다. 안쓰는 테이블은 홀 한쪽으로 다 밀어놨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에 외부업체에서 와서 조명을 다시 가져가려고 천정에서 내리고 있었다. 벽에 있는 레버를 조작하니까 줄에 달린 조명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꽤 컸다.

테이블과 의자를 다 치우고 나니 관리자가 내일 연회에서 사용할 테이블에 식기를 세팅해야 된다고 했다. 먼저 의자 앞에 큰 접시를 놓고 그 위에 커피받침이라는 작은 접시모양의 받침을 놓았다. 그리고 큰 접시 오른쪽에 포크와 나이프를 놓고 그 위에 물잔을 놓았다.

모든 세팅이 다 끝나자 관리자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때 시간이 9시 50분이었다. 지배인이 왔다. 관리자가 사람들을 퇴근시켜도 되는지 물었다. 지배인이 그러라고 말한뒤에 오늘 모두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인원 관리자가 사람들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인원 관리자를 따라서 다시 2층의 린넨실로 갔다. 관리자가 퇴근 사인을 하고 돌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퇴근 사인은 출근 사인을 한 부분의 옆에 퇴근 시간만 적으면 됐다. 원래는 11시까지 일하기로 했는데 1시간 빨리 10시에 끝났다. 관리자가 내일 오전까지 용역업체 홈페이지에서 급여신청을 하면 내일 오후에 입금된다고 했다.

퇴근 사인을 하고 짐을 챙겨서 탈의실로 내려와서 옷을 갈아입엇다. 유니폼 정장은 의상실에 있는 세탁물 바구니에 넣었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서 호텔을 나왔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호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11시에 끝났으면 버스를 타고 돌아오지 못할뻔했다. 10시에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용역업체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급여신청을 했다. 먼저 회원가입을 하고 일한 날짜와 일한 호텔을 선택하면 신청이 끝났다.

다음날 급여가 들어왔다. 52000원이 계좌로 입금됐다. 시급이 7000원에 8시간 일했으니까 56000원이 들어와야 되는데 좀 이상했다. 그래서 문자로 용역업체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담당자가 식사시간이 30분 있었으니까 3500원이 빠지고 계좌이체 수수료로 500원이 또 빠졌다고 말했다. 이유를 들으니 이해는 됐지만 왠지 치사한 느낌이 들었다.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급여는 그냥 평범한 수준인것 같다. 쟁반을 드는게 약간 어렵고 일한 다음날 팔이 너무 아픈게 단점이다. 자주는 못해도 가끔 하면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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